메르세데스, 바그너 시대 막 내리고 AMG 수장이 새로운 시대 연다

메르세데스, 바그너 시대 막 내리고 AMG 수장이 새로운 시대 연다

튜9 0 61 0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 정체성을 지난 20여 년간 이끌어온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 최고디자인책임자(CDO)가 내년 1월 회사를 떠난다. 1997년 입사 이후 28년간 이어진 그의 커리어는 메르세데스 양산차 디자인은 물론, 내부 디자인 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바그너가 2026년 1월 31일부로 자리에서 물러나며, 이는 본인의 요청과 상호 합의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후임으로는 AMG 퍼포먼스카 디자인을 총괄해온 바스티안 바우디(Bastian Baudy)가 선임된다.


바그너의 퇴장은 메르세데스 디자인 역사에서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메르세데스의 디자인은 2000년대 초반의 보수적이고 엔지니어 중심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감성과 조형미를 강조한 현재의 형태로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CEO는 “고든 바그너는 비전 있는 디자인 철학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해왔다”며 “그의 창의성과 미래를 내다보는 감각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미학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센슈얼 퓨리티’로 바꾼 메르세데스의 얼굴


바그너는 2008년, 39세의 나이로 메르세데스 디자인 총괄 부사장에 오르며 당시 글로벌 자동차 업계 최연소 수석 디자이너로 주목받았다. 그가 이끌게 된 조직은 전통과 현대 디자인 사이에서 방향성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전임자인 피터 파이퍼는 공학적 논리에 기반한 전통적 디자인을 중시했다.


바그너가 제시한 해법은 2009년 공개한 ‘센슈얼 퓨리티(Sensual Purity)’ 디자인 철학이었다. 이는 군더더기를 줄인 면 처리와 조각적인 형태를 통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디자인을 지향했다. 각지고 복잡한 선이 많던 기존 메르세데스 디자인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었다.


그는 2019년 인터뷰에서 “이제 더 이상 보수적일 수는 없다”며 “메르세데스는 감성적이어야 하고, 차에 타기 전부터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철학의 정점으로 꼽히는 모델은 AMG GT다. 바그너는 이 차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러 차례 언급하며 “GT는 순수한 감정과 매혹의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이 밖에도 그는 수많은 콘셉트카를 통해 메르세데스의 미래 디자인을 제시해왔으며,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공개된 아르데코풍 콘셉트카 ‘비전 아이코닉(Vision Iconic)’이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이 콘셉트는 2026~2027년 등장할 전기 C클래스와 E클래스의 디자인 방향성을 예고한 모델로 평가된다.


엔지니어 중심 전통을 깬 첫 ‘순수 디자이너’


1968년 독일 에센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뒤스부르크-에센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교통디자인을 수학했다. 폭스바겐, 마쓰다, GM을 거쳐 1997년 메르세데스에 합류했으며, 당시 디자인 총괄이던 브루노 사코 밑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R클래스와 ML, GL의 내·외장 디자인을 맡았고, A·B·C·E클래스와 CLS, SLR 맥라렌까지 주요 차종 디자인을 총괄하며 빠르게 입지를 넓혔다. 2016년에는 이사회 멤버로 승진해 AMG, 마이바흐, EQ, 스마트, 상용차 부문까지 그룹 전반의 디자인을 책임졌다. 자동차를 넘어 헬리콥터, 요트, 두바이·마이애미의 고급 주거 프로젝트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특히 그는 메르세데스 역사상 최초의 ‘순수 디자이너’ 출신 디자인 수장이었다. 이전의 수장들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센슈얼 퓨리티로의 전환은 조직 문화 자체의 변화였다는 평가다.


바그너의 행보가 늘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다. EQS를 비롯한 EQ 전기차 라인업의 유선형 디자인은 공기역학적 완성도와 달리 ‘젤리빈’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판매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EQ 모델들이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회귀한 것은 이러한 논란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내 디자인에서도 대형 디스플레이 확대는 그의 철학과 충돌했다. 56인치 하이퍼스크린을 선보이면서도 그는 “스크린은 럭셔리가 아니다”라며, 향후에는 장인정신과 질감을 강조한 ‘하이퍼 아날로그’ 접근을 예고하기도 했다.



 


 

후임자인 바스티안 바우디는 41세로, 다시 한 번 젊은 디자이너가 메르세데스 디자인을 이끌게 됐다. 그는 AMG 비전 그란 투리스모 콘셉트로 이름을 알렸으며, 최근에는 EQE와 E클래스 디자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업계는 바그너가 남긴 유산 위에서 바우디가 어떤 새로운 해석을 더할지 주목하고 있다.
 

0 Comments     0.0 / 0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